팰림프세스트
– 유전자로부터 읽어낸 판독물이자 조상이 살던 환경들을 암호로 기술한 풍부한 문서 –
나는 동물이 과거 환경의 판독문이라는 말을 매우 거리낌 없이 하고 있지만, 과연 과거로 얼마나 멀리까지 올라 갈 수 있을까?
우리의 허리 통증은 겨우 600만 년 전만 해도 우리 조상들이 네발로 걸었음을 상기 시킨다. 우리 포유동물의 등뼈는 수억 년 동안 수평으로 놓여 있었고, 몸은 그런 등뼈에 의존했다. 말 그대로 그 등뼈 아래로 매달려 있었다. 즉, 사람의 등뼈는 본래 수직으로 서 있으려고 ‘목적한 것’이 아니었기에, 등뼈가 항의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우리의 사람 팰림프세스트에는 ‘네발 동물’이라고 확고한 필체로 굵게 적혀 있었고, 그 위에 두 발 동물이라는 새로운 기술문이 너무나 얕게 그리고 때로 고통스럽게 겹쳐 쓰여 있었다. 우리는 비교적 최근에 출현한 두 발 동물이다.
우리에게는 도마뱀을 비롯해서 모든 육상 척추동물의 수생 원고가 데본기 (기원전 4억 196만 년 ~ 기원전 3억 5920만 년 )까지 올라가고 더 나아가 생명이 바다에서 시작된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말해 주는 화석들이 있다. 우리의 짠맛 나는 혈장이 고생대 바다의 잔재라는 식으로 시적으로 이 요점을 표현하기도 한다.
J.B.S 홀데인 ( 영국 태생의 유전학자이자 진화 생물학자로 신 다윈주의 사상을 발전시키는데 기여 ) 은 이렇게도 말한다. – 우리는 첫 9개월을 짠 액체 안에 뜬 채로 그 액체의 보호를 받는 수생동물로 지낸다. 우리는 짠물 동물로서 삷을 시작한다. –
팰림프세스트의 가장 깊은 층은 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억 년이 흐른 뒤, 식물과 다양한 동물은 차례로 뭍으로 올라오는 모험에 나섰다. 전갈, 달팽이, 지네, 노래기, 거미 뿐만 아니라 쥐며느리와 물개, 곤충같은 갑각류, 오늘날 까지도 수분이 있는 곳에서 결코 멀리 가지 않는 다양한 벌레가 독자적으로 이 걸음을 내디딘 동물 집단들이다.
육지로의 이주가 어떤식으로 이루어졌든 간에, 심오한 재설계가 필요해졌다. 실제로 물은 공기를 접한 땅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동물이 물 밖으로 이주하는 과정은 해부 구조와 생리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나중에 많은 동물 집단이 물로 되돌아 갔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육지로 올라오기 위해 힘들게 개량한 도구들을 내버리고 다시 물로 돌아갔다. 우렁이, 물거미, 물방개 등이 그런 무척추동물에 속한다. 그러나 고래 ( 돌고래 포함 ) , 바다소, 바다뱀, 거북을 포함한 일부 척추동물은 조상들이 그렇게 힘들게 떠났던 짠 바닷물 세계로 곧장 돌아갔다.
물범, 바다사자, 바다코끼리와 그 친족들, 또 갈라파고스의 바다 이구아나는 먹이를 찾아서 중간 정도로만 바다로 돌아간 동물들이다. 이들은 여전히 육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육지에서 번식한다.

물거북과 땅거북
물거북과 땅거북은 팰림프세스트 관점에서 볼 때 특히 흥미로운 동물이며, 특별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땅거북은 기나긴 진화과정에서 이중으로 되돌아 가기를 한 팰림프세스트 연대기 ( 물 – 육지 – 물 – 육지 ) 를 지닌 유일한 집단이다.
거북의 어류 조상들은 우리를 포함한 모든 육상 척추동물들의 조상들과 더불어 약 4억년 전 데본기에 바다를 떠났다. 그들은 육지에서 얼마간 살다가 고래와 듀공처럼, 물로 돌아갔다. 그들은 바다 거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특이하게도 일부 물거북은 다시 육지로 돌아가서 오늘날 마른땅의 거북이 되었다.
우리는 분자 유전학을 포함한 모든 가용 증거를 써서 현생 거북류의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현재의 땅거북들은 수생 거북들로 이루어진 가지들 사이에 들어있다.

분자유전학
동물의 계통도를 재구성하기 위해 생물학적 팰림프세스트의 아래층들을 읽을 때 행태학은 분자 유전학에서 기를 못 펴는 신세가 되었다. 현대 분자분류학이 등장하기 오래 전, 풍부한 형태학적 증거들은 돌고래가 모습도 행동도 커다란 물고기와 비슷하지만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돌고래와 고래가 포유류임을 과학이 오래 전 부터 알고 있었긴 해도, 20 세기 후반에 분자 유전학자들이 내놓은 폭탄 선언을 받아들인 준비가 된 동물 학자는 한명 도 없었다.

분자 유전학자들은 고래가 우제류, 즉 발굽이 짝수인 발굽 동물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보여 주었다. 하마와 가장 가까운 현생 친척은 고래였다. 실제로 하마는 갈라진 발굽을 지닌 돼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보다 고래와 가까운 친척이다. 유전자 서열 분석은 앞으로 또 다른 충격을 안겨 줄 수 도 있다.
불멸의 유전자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