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중되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물동량이 급감한 데 이어,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봉쇄를 선언함에 따라 ‘2차 오일 쇼크’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모양새입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교보증권에서 발행한 ‘유가 2차 충격 주의보’에 관한 내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선박량 급감으로 확인된 1차 충격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량은 6월 말 하루 최대 50척 이상까지 회복됐지만, 현재는 하루 2~4척 수준으로 급감한 상태입니다. 이는 해협을 둘러싼 지정학적 긴장이 실물 물동량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에 더해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사나 공항 폭격에 대응해 홍해 원유 수송로 봉쇄를 선언하면서 국제유가는 저점 대비 WTI 기준 25%, 브렌트유 29%, 두바이유 19% 각각 반등했습니다.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갖는 특별한 의미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항로가 사우디의 우회 수출 경로였기 때문입니다. 사우디는 동서파이프라인을 통해 동쪽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를 서쪽 얀부항으로 옮긴 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아시아로 수출하며 호르무즈 봉쇄에 따른 공급 차질을 일부 상쇄해왔습니다.
동서파이프라인의 하루 최대 수송량은 700만 배럴이며, 이 중 250만~350만 배럴은 자국 정제시설로, 나머지 약 400만 배럴은 수출용으로 쓰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글로벌 공급 부족분이 전체의 15% 수준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막히면 추가로 약 4%p의 공급 차질이 더해질 수 있습니다.

장기 봉쇄 시나리오, 유가 150~160달러 가능성
양쪽 해협이 동시에 장기 봉쇄 국면에 들어갈 경우, 국제유가는 배럴당 최대 150~16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특히 이번에는 과거 호르무즈 해협 봉쇄 당시보다 유가 상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간 유가 안정을 지탱해온 완충장치가 대부분 소진됐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난 2분기 글로벌 원유 공급이 15% 줄었을 때 국제유가는 저점 대비 56% 상승하는 데 그쳤습니다.
과거 오일쇼크 당시 7%의 공급 차질만으로도 유가가 130% 급등했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 민감도 자체는 낮아진 셈입니다. 이를 가능케 한 완충 요인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 전략비축유(SPR) 소진: IEA 주도로 역대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을 이미 방출하여 추가 방출 여력이 부족합니다.
- 대체 에너지(석탄) 전환 한계: 아시아 국가들이 석탄 전환을 시도했으나, 최근 석탄 가격이 동반 상승하면서 대체 효과가 약화되었습니다.
- 중국 수요의 착시: 중국의 전기차 침투율 확대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용 휘발유는 전체 중국 석유 소비의 20% 수준에 불과하여 전체 수요를 억제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 사우디 우회 경로 차단: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로 사우디의 우회 수단 자체가 무력화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네 가지 완충장치가 이제 모두 여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략비축유는 이미 대규모로 소진돼 재고가 빠르게 줄었고, 중국의 석탄 전환 효과도 최근 석탄 가격 동반 상승으로 희석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우디의 우회 수출로마저 막히면, 유가를 눌러줄 마지막 카드까지 사라지는 셈입니다.

유가보다 무서운 건 ‘크랙 스프레드’와 미국 CPI
더 큰 문제는 원유 가격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소비자물가로 전가되는 구조에 있습니다. 지난 6월 미국-이란 휴전 기대감에 국제유가가 빠르게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휘발유 소매가격의 하락폭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구조적 배경이 있습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정유소가 타격을 받아 경유 정제 능력이 크게 악화
- 경유·항공유 마진이 확대되며 상대적으로 휘발유 정제 유인이 약화
- 중국의 정유제품 수출 통제와 미국 휘발유 재고 감소로 소매가격 하방 경직성 강화
원유가와 휘발유가의 차이인 크랙 스프레드가 확대 추세를 보이는 만큼, 미국 물가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전쟁이 장기화돼 WTI가 90달러를 웃돈다면, 크랙 스프레드를 반영한 미국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10~4.30달러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 CPI에서 에너지 비중은 6.5%로 크지 않지만, 변동성이 워낙 커서 최근 3개월 CPI 전월 대비 변동분의 대부분을 에너지가 설명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전쟁이 3분기 내 진정되더라도, 높은 정제마진 탓에 미국 CPI가 3% 중후반대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아시아, 그리고 한국이 받을 파장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가 현실화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결국 아시아 국가들입니다. 사우디 우회 수출 물량의 90%가 아시아향인데, 바브엘만데브 해협이 막히면 홍해 북쪽 수에즈 운하와 대서양을 거쳐 크게 우회해야 합니다. 이 경우 항해 일수가 왕복 3~4주 이상 늘어나고, 물동량과 운송거리를 곱한 톤마일이 급증하면서 전쟁보험료를 포함한 운임 자체가 크게 뛰게 됩니다.
이는 그대로 국내 정유사의 원유 도입 원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석유 최고가격제 연장이 없다면, 이 비용 상승분은 소매가격을 거쳐 국내 소비자물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여지가 있습니다.
금융 시장은 이미 양방향 헤지 중
현재 금융시장은 원유 수급 타이트함(백워데이션 심화)을 반영하면서도,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대응해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옵션시장에서는 콜(Call)과 풋(Put) 양방향 모두 미결제약정이 크게 늘었는데, 이는 유가 급등과 급락 시나리오 모두에 대비하는 헤지 수요가 커졌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선물시장에 반영된 수급의 타이트함(백워데이션)도 최근 다시 확대됐지만, 3개월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양호한 수준입니다.
지정학 리스크가 진정된다면 원유 시장은 다시 과잉공급 국면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유가 급등 리스크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호르무즈에 이어 바브엘만데브까지 걸린 이번 국면은, 원유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